규빈이가 태어난지 34개월이 지났다. 해가 바뀌었으므로 한국 나이로는 벌써 4살이다. 3살 초반 까지만해도, 아빠 말을 잘 따랐던것 같은데... 30개월 전후로 아빠는 완전 찬밥 신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최대한 정시에 퇴근해서 집에 와도 7시 30분쯤인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시간은 4시 30분. 매일 3시간씩 아내는 온 열정을 다해 아이와 놀아 주고 있는 것이다.

주말에는 토/일 나눠서 아내와 하루씩 육아를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워낙 적다 보니까 아이를 잘 관찰해서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해 주기보다도... 그 동안 내가 못해준 놀이를 내 관심사에 맞춰서 놀아주게 된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이런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점점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괴롭다.

이러한 시간이 쌓이다 보니, 나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을 해도 "아빠 가!"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듣게 된다. 악순환이 되는 것이 이런 말을 들으면, 아빠도 상처를 받게 되고, 제일 편하게 육아를 할 수 있는 "TV 보여주기"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함께 TV를 볼때는 화면에 보이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어느새 아빠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올 해의 다짐으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때는 최대한 컴퓨터를 멀리하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빠, 또 놀러와!" 라는 끔찍한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루시드 폴의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앨범을 먼저 접하고, 왠지 수필집을 같이 읽어보고 싶었다. 본인의 노래를 본인이 직접 만든 사람의 수필집에는 노랫말과 가락의 재료가 되는 경험과 감성이 담겨 있었다.

제주도에서 농사일을 배우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본인이 직접 감귤농장을 운영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은 결국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의 좋은 재료가 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을 사랑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예뻐할 줄 알았던 그의 다양한 경험을 읽을때마다 그의 노래가 새롭게 들렸다. 처음엔 리듬이 좋았는데, 나중에는 가사가 들를때 마다 그가 경험했을 제주도에 내가 서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 해 볼 수 있어서 또 좋았다.

규빈이가 태어나고, 육아에 대해서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공동육아를 알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육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관심있는 공동육아의 형태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어린이집이 운영되어, 조합에 출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린이집을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실제로 운영에 많이 참여를 하는 형태이다.

규빈이가 2살 되던 해에 산들어린이집 입학설명회에 다녀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어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내부에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아이가 3살 되던 해에 산들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그때는 3세 반을 모집하지 않는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1년을 더 기다렸다. 내년에는 꼭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한번 설명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설명회가 끝난 이후에는 지원자에 한해서 부모와의 면담 시간이 있었다. 말이 면담이지.. 1시간 가량 진행되는 거의 면접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공동육아는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참여하는 활동이 많기 때문에, 부모가 공동육아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산들의 발전을 위해 소중한 목소리를 낼 용기가 있는지... 또 다른 산들 아마(아빠,엄마)들과 원만하게 잘 지낼 수 있는지... 이런 부분들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면접이 끝나고 3-4주 정도 기다리니까 '산들 가족이 되신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공동육아의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구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에 내년이 기대된다.